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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순교자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묵시 7,14)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인·순교자들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St. Chung, Mun-ho Bartholomeus
1801년 충청도 임천 출생
1866년 12월 13일 전주 숲정이 순교

“우리는 오늘 천국의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된 날입니다.”



일명 기식(基植)이라고도 하며 1801년 충청도 임천(현재 충남 부여군 충화면)에서 태어났으며, 손선지와는 동향인이었다. 그는 한때 충청도에서 고을의 원님을 지낸 양반 출신으로 입교한 후에는 관직을 그만두고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는 박해가 일어나자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양반이라면 유교의 법도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나라가 이단 사설이라 해서 엄하게 막는 천주교를 믿고 있으니 친척과 이웃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문호는 고향을 떠나 유랑생활을 하다가 손선지가 정착해 살고 있는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 신리골을 찾아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는 양반 신분답게 행장이 점잖고 인품이 훌륭하였으며, 수계생활도 모범적으로 하였다. 또 예의범절이 발라 사람들에게 좋은 표양을 보여주어 존경을 받았고, 외교인이건 교우이건 교리를 설명할 때면 학식이 높아 소상하게 잘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교우이건 외교인이건 으레 정문호를 찾아와 물었다.

병인년 가을, 그는 박해가 극성해졌다는 풍문을 듣고 머잖아 전라도에도 박해가 닥치리라 예상하였다. 그래서 읍권(邑權: 風憲)이 있는 오사현에게 부탁하여 전주 감영의 공기를 알아오도록 부탁하였다. 그러고 기다리는 사이에 전주 포교 일행이 밤중에 들이닥친 것이다. 저녁 무렵인데 포졸들은 담배를 사러 온 사람으로 가장하고는 정문호의 집 문밖에 와서는 담배를 사러 왔다면서 나오라고 하여 체포하고 끌고 갔다. 그는 한 마을에서 체포된 손전지, 한재권과 함께 12월 5일 구진이 주막에 가서 하룻밤을 지냈다. 전주 감영에서 출동한 포교들은 두 패로 나뉘어 한 패는 신리골로 오고, 다른 한 패는 유상리 성지동으로 천주교도들을 잡으러 갔다. 그날 밤 성지동에서도 교우들이 잡혀와 구진리에서 합류하였다.

이튿날 전주 감영으로 끌려가 진영 앞 구류간에 갇혔고, 3일 만에서야 첫 심문을 받았다 심문 내용은 늘 천주교들에게 묻는 그런 내용이었다. 천주교 서적은 어디 두었으며, 천주교도들의 명단을 사실대로 불고, 배교하라는 것있었다. 그는 늙은 몸인데다가 험한 몸고생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처음 고문을 당할 때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조화서로부터 열심한 마음으로 치명하자는 격려를 받고는 마음을 굳게 먹고 치명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래서 영장에게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고 죽기로 결심하였다고 뜻을 밝혔다.

그는 12월 13일 처형날 형장으로 걸어가면서 희색이 만연한 채 동료들에게 “오늘 우리는 천당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니 즐겁구나.” 하며 큰소리로 말하자 모두 맞소리를 쳤다. 그는 양반으로서 그 옛날 과거시험을 치러 갈 때 체험하였던 그 기쁨이 생각나 순교의 길을 그처럼 비유하였던 것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서문 밖 장대(將臺: 군 지휘소)가 있는 숲정이에서 휘광이의 세 번째 칼에 목이 떨어졌다. 때는 1866년 12월 13일, 그의 나이 66세(혹 70세)였다.

정문호의 시체는 처형 후 오사현의 주선으로 전주시 진북동 진북사 범바위(일명 부엉바위) 밑 도랑가에 다른 5명의 순교자와 함께 가매장되었다. 그후 1867년 정월 그믐(양력 3월6일) 정문호의 가족은 손선지의 아들 손순화(요한)와 한재권의 가족과 함께 가매장터로 가서 반장(返葬: 옮겨다 장사지내는 일)하였는데, 처음에는 다리실에 인접하여 다리실이나 다름없는 시목동에 안장하였다. 그렇게 된 것은 정문호가 순교하고 나서 손선지의 아들이 다리실로 이사하자 그를 따라와 시목동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정문호의 가족이 시목동을 떠나게 되나, 이들은 정문호를 손선지 곁으로 면례(緬禮: 무덤을 옮기어 장사지내는 일) 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다. 정문호는 1968년 10월 6일 시복(諡福), 1984년 5월 6일 시성(諡聖)되었고, 그의 무덤은 천호성지에 있다.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1」, 1998, 289-291 참조)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묘지

[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기도문 ]

순교자들의 피로 이 땅을 거룩하게 하신 하느님!
지상의 부귀 권세를 버리고 성자의 수난과 죽음을 본받아 용맹하게 순교하신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를 당신 친히 새롭게 하셨으니,
겨레의 구원을 위해 드리는 전구를 들으시어,
부활을 믿는 저희 모두가 성인의 표양을 본받아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용감히 진리를 증거하고,
맡은바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게 하소서.
아멘.

관련성지

1. 지석리 성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368-1 / 041-836-0067 (대전교구 홍산성당)

2. 전주 숲정이 성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공북로 19 / 063-255-2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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